죠이플 창(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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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 목사님의 마음과 생각들을 담은 글들입니다.

저비용, 고효율

Author
admin
Date
2018-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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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성비’란 단어가 많이 들립니다. ‘가성비’란 ‘가격 대비 성능 비율’을 말하는 것입니다. 물건을 살 때나 여행을 갈 때도 작은 비용을 들여 만족스런 결과를 얻었을 때 기분이 좋습니다. 반면, 많은 물질을 쏟아 붓고, 정성을 기울였는데도 결과가 미미할 때 허탈하고 억울함을 느낍니다.

가성비가 낮아도 그 대상이 별로 값어치가 없거나 귀중하지 않은 것이라면 상관이 없습니다. 그냥 아쉬움 정도로 끝이 납니다. 맛집을 찾아 갔는데 기대만큼 못 미칠 때 다음부터는 안가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정성을 들여 여름 휴가를 계획하고, 최고의 호텔을 예약했는데 가성비가 떨어진다면 그 기회 비용과 물질이 두고 두고 아쉽습니다.

그런데 가성비가 떨어지는 것이 단지 물질의 문제가 아니라, 다시 기회를 얻기 힘든 시간의 문제라면? 혼과 육체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영혼의 문제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신앙 생황을 하면서 영혼의 가성비가 떨어지는 성도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많은 열심과 물질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그 날에 예수님께서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라며 바깥 어두운데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성도가 있을 것을 성경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눅 2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부자들이 헌금하는 것과 한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헌금하는 것을 비교하시면서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고 칭찬 하십니다. 또 눅 18장에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비교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바리새인이 다른 사람들 처럼 죄도 짓지 않고,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십일조를 드렸노라고 기도하고, 세리는 감히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멀리 서서 가슴을 치며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기도한 것에 대해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이 아니라 세리가 의롭다하심을 받고 돌아갔다”고 말씀하십니다.

부자의 많은 헌금과 바리새인의 종교적 열심이 귀하지만 아무 결과도 만들어 내지 못하는 가성비 최악의 헌신이 되었습니다. 반면, 가난한 과부와 세리는 적은 것을 가지고도, 연약함을 가지고도 최고의 ‘영적 가성비’를 이뤄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저비용, 고효율의 영적 가성비를 높이는 방법은 ‘마음을 드린 예배와 기도’입니다.

하루를 시작할 때 마음을 드려 예배와 기도로 시작하면 하루가 보호 받는 은혜를 누리게 되고, 주일 예배를 온전한 마음으로 드릴 때 일주일이 새롭게 됩니다. 두렵고 떨리는 일을 앞에두고, 마음을 드리는 예배로 인해 평강을 얻습니다. 어렸을 때에 드린 예배에서 받은 은혜가 평생을 지켜 줍니다. 마음을 드린 예배는 참으로 저비용 고효율의 보고(寶庫)입니다.

올 해도 이제 다섯 달 남았습니다. 그 동안 여러분의 영적 가성비, 신앙 생활의 가성비는 어떻습니까? 칭찬 받을만 하십니까? 아니면 허송세월한듯 ‘고비용, 저효율(?)’의 가성비 최악의 시간들을 보내셨습니까? 마음을 드린 예배로 가성비의 역전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그 동안 낭비되었던 시간이 복구되고, 잃었던 인간 관계가 회복되고, 자녀들의 마음이 돌아오고, 기도하던 건강과 물질, 영혼의 평강이 다시 일어나길 축복합니다.